사람을 살 찌우는 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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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 사람을 살 찌우는 일 >

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.

그걸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.

눈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나무에서

꽃과 이파리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

앙상한 가지만 남은 처참한 광경을,

두 손이 결박당한 채

바라봐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.

어머니는 응급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는 동안

핏기없는 입술을 겨우 벌려

가쁜 숨을 몰아쉬었다.

난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 

뚝뚝 떨어지는 링거액을 응시하다 

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.

그리고 빌었다.

포도당아, 전해질아, 어머니 혈관을 타고

재빨리 흘러들어 가서 

어서 양분을 공급해주렴.

꽃과 이파리가 더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렴.

내 바람이 통했는지 링거를 다 맞을 무렵

어머니는 안정을 되찾았다.

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을 나서는 순간,

링거액이 부모라는 존재를

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.

뚝.

뚝.

한 방울 한 방울

자신의 몸을 소진해가며

사람을 살찌우고,

다시 일으켜 세우니 말이다.

- 이기주 '언어의 온도' 발췌 -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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