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람을 살 찌우는 일
- ▶좋은글
- 2017. 12. 18. 10:3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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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 사람을 살 찌우는 일 >
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.
그걸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.
눈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나무에서
꽃과 이파리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
앙상한 가지만 남은 처참한 광경을,
두 손이 결박당한 채
바라봐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.
어머니는 응급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는 동안
핏기없는 입술을 겨우 벌려
가쁜 숨을 몰아쉬었다.
난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
뚝뚝 떨어지는 링거액을 응시하다
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.
그리고 빌었다.
포도당아, 전해질아, 어머니 혈관을 타고
재빨리 흘러들어 가서
어서 양분을 공급해주렴.
꽃과 이파리가 더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렴.
내 바람이 통했는지 링거를 다 맞을 무렵
어머니는 안정을 되찾았다.
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을 나서는 순간,
링거액이 부모라는 존재를
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.
뚝.
뚝.
한 방울 한 방울
자신의 몸을 소진해가며
사람을 살찌우고,
다시 일으켜 세우니 말이다.
- 이기주 '언어의 온도' 발췌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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